그동안 상당수의 프로야구 스타 선수들이 스포츠조선의 10대1 인터뷰를 통해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았다. 그런데 눈치빠른 팬들은, 벌써 등장했어야 할 선수가 10대1 인터뷰를 여태 하지 않았다는 걸 캐치했을 것이다.
삼성 양준혁이다. 팬들은 또한 그 이유도 짐작할 것이다. "대체 결혼은 언제 할 겁니까?"라는 식의 이 질문만 숱하게 중복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.
바로 이런 우려 때문에 양준혁은 "나중에 합시다"라고 차일피일 미뤄왔다. 그런 그가 최근 은퇴를 선언했다. 당연히 10대1 인터뷰는 양준혁을 선택했다. 그 또한 "이젠 합시다"라고 흔쾌히 승낙했다. 지난 31일 대구구장에서 양준혁을 만났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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Q. 왜 은퇴했어? 이리 오지… <김성근 감독> |
A. SK 가고 싶었죠…갈등했어요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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◇삼성 양준혁이 '올시즌 종료 후 은퇴' 선언을 한 뒤 스포츠조선 10대1 인터뷰를 통해 선배, 동기, 후배들의 각종 질문에 시원스럽게 답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. 지난달 28일 대전 한화전에 앞서 선발 류현진에 대비해 후배들에게 배팅볼을 던져주고 있는 양준혁. <대전=송정헌 기자 songs@sportschosun.com>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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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친구에게 고생 많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. 우리 아버지 회갑(94년)때 네가 잔치에 찾아와 개다리춤까지 추고 최선을 다했다. 친구 아버지를 위해 그리 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. 덕분에 뜻깊은 날이 됐다. 혹시 기억하는가. 창피하진 않았냐.(KIA 김태룡 코치ㆍ동기생)
▶기억난다. 개다리춤 뿐 아니라 까투리타령도 불렀는데 그건 왜 얘기 안하냐. 솔직히 창피했지만, 사회자가 자꾸 불러내면서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잖아. 내가 또 멍석 깔아주면 잘 하잖아.
-김태한 동봉철과 우리 모두 동기생이다. 입단때 우리 넷이 결혼하면 서로 에어컨을 선물해주자고 약속했다. 나, 태한이, 봉철이 모두 에어컨을 받았다. 친구야, 나 정말로 너에게 에어컨 선물을 해주고 싶다. 언제쯤이면 선물할 수 있겠냐.(김태룡 코치)
▶언젠가는 할거니까, 걱정하지 말고. 에어컨 안 사줘도 되니까 돈으로 주라.(웃음)
-제가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건 제가 50%, 제 와이프가 50%의 몫을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. 선배님은 혼자 살면서도 어떻게 그리 관리를 철저히 해서 레전드가 되셨나요.(롯데 홍성흔)
▶그런 거 없는 대신, 나는 자유를 얻고 있다.(웃음) 꼭 내조가 필요한 지는 모르겠어.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때문에 굳이 내조를 받아야 야구를 잘 하는 건지는 모르겠다.
-아직 잘 하고 있고 올해 성적도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. 미국에선 그런 상황에서 은퇴하는 선수가 별로 없다. 무슨 이유로 은퇴를 결심했나.(롯데 로이스터 감독)
▶게임을 너무 못 나가면서, 팀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계속 받았습니다. 계륵 같은 존재로 생각됐고, 자리를 차지하는 것 보다는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게 팀으로 봐선 나을 것 같았습니다. 은퇴 발표 뒤 며칠이 지났는데, 지금 생각해도 잘한 것 같습니다.
-지도자가 된다면 선수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타격 매커니즘이 무엇인가요.(넥센 송지만)
▶어떤 상황이든 자기 스윙을 할 수 있는 것이지. 빗맞아도 힘이 실려서 안타가 될 수 있는 그런 타구가 나와야 3할 이상을 칠 수 있어. 그 바탕은 역시 선구안이겠지.
-양신이란 별명을 얻을만큼 큰 업적을 남겼는데, 대신 크게 희생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나요.(넥센 강정호)
▶이런 얘기 뭣하지만, 나는 나만 잘하는 게 아니라 같이 잘 할 수 있는 야구를 추구해왔어. 내 앞뒤에 있는 타자들이 더 돋보이도록 만드는 그런 역할 말이지. 내가 스포트라이트 받는 것 보다는 다른 타자들이 더 많이 받게 하려 노력했어. 그게 일종의 희생이 아니었을까. 내가 출루율이 좋고 하니 찬스를 잘 연결시켜줬지. 나는 축구로 치면 볼 배급하는 미드필더야.
-타임머신이 있다면 돌아가고 싶은 시점은 언제인가요.(넥센 강정호)
▶93년 한국시리즈. 그때 (박)충식이가 15회를 던졌지. 12회였던가? 내가 무사 2루 찬스에서 끝낼 기회가 있었는데 못쳤어. 그래서 충식이를 고생시켰지. 그 때문에 충식이 선수 생명이 짧아진 것 아닌가 미안한 마음도 들어.
-준혁이가 LG에 있을 때 나는 다른 타자들과 똑같이 대했다. 야단도 많이 친 기억이 있다. 그래도 넌 너무 잘 했다. 왜 은퇴했을까. SK로 오지 그랬나.(SK 김성근 감독)
▶솔직히 진짜 SK로 가고도 싶었습니다. 양자택일의 기로였는데요. 저는 여기 대구와 삼성에서 야구를 시작했고, 대구에서 끝내는 게 맞다고 판단했습니다. 구단에선 다른 팀을 원할 경우 조건없이 풀어준다고 배려했으니 저도 갈등했습니다. 만약 (김성근) 감독님 밑에 갔으면 3년이고 몇 년이고 더 할 수도 있었겠지만, 저의 가장 오래 된 연인(삼성)의 품에서 그만둘 수 있는 것도 선수로서 행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. 감독님이 저를 알아주셔서 지금도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. 올스타전 때도, 그냥 사라질 뻔했던 저에게 자리를 마련해주셨습니다. 홈런도 치고 끝내게 돼서.... 그 홈런은 제 생애 최고의 홈런이었습니다. 멋있게 마무리하게 만들어주셔서 또한번 감사드립니다.
-어쩌면 그리 꾸준하게 좋은 활약을 하셨는지 노하우가 궁금합니다. (농담으로) 너무 독하신 것 아닌가요.(SK 최 정)
▶나? 알고보면 전혀 안 독해. 다만, 야구에 대한 열정이 다른 선수들 보다는 조금 더 있었던 것 같어. 나랑 몇마디만 해보면 독하다는 생각이 안 들걸.
-그 엄청난 타격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어떻게 전수해 줄건가요.(LG 서용빈 코치)
▶노하우라기 보다는, 본인만의 개성이 있을 것이다. 단점을 빨리 찾고, 스스로에게 처방을 내리는 노력이 가장 중요할 것 같다.
-(농담으로) 혹시 지겨워서 은퇴하신 것 아닙니까. 친한 방송사 작가 누나가 선배님을 9월에 있을 미팅프로그램에 출연 좀 시켜달라고 합니다. 나가실 겁니까.(삼성 신명철)
▶지겨워서?(웃음) 나는 야구할 때가 가장 재미있었어. 여전히 지금도 야구가 가장 재미있어. 벤치를 지킬 때도 지겹다는 생각은 한번도 안 했다. 그리고 말이다. 나 한국시리즈 나갈거야. 그런데 무슨 미팅이냐. 요즘 내가 왜 계속해서 배팅 훈련을 하겠냐. (웃으며) 얘들이 내가 완전 은퇴한 줄 아는데, 나 분명히 시즌 끝나고 은퇴거든? 니들 정신차려라. 니들이 빌빌거리면, 나 선수 등록 하는 수 있다.(웃음) 긴장해라.
-훗날 지도자가 되면, '양준혁의 야구'는 어떤 스타일일까요.(삼성 배영수)
▶어찌 표현할까. 싸움닭 야구. 평소 야구 외적으론 자유롭지만, 야구장에선 독하게 싸움닭으로 변하는 그런 야구가 좋을 것 같다.
-왜 줄기차게 검은색 배트만 쓰셨나요. 일종의 징크스입니까.(삼성 안지만)
▶샘 배트가 강해보이는 측면이 있다. 한번 써봤다가 완전 내 스타일이라고 생각했지. 그래서 미국에 계속 직접 주문해서 써왔다. 그게 사실 배리 본즈가 쓰는 배트였어. 난 배리 본즈처럼 야구를 하고 싶었다.
-투스라이크 이후 어떤 타자보다 선구안이 좋은 것 같습니다. 투스트라이크 이후에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합니다.(한화 신경현)
▶(고개를 갸웃하며) 이상하다. 내가 한화 상대 타율이 가장 나쁠텐데.(웃음) 투스트라이크 이후에는 죽더라도 곱게는 안 죽는다는 게 내 철칙이야. 투수를 공 하나라도 더 던지게 괴롭히는 거지. 볼이라도 하나 더 고르면서 쉽게는 안 죽는 거야. 결정구를 골라내면 투수가 데미지를 입어.
-특별히 애착 가는 기록이 무엇인가요. 통산 타율만 2위인데 아쉽지 않으세요.(한화 류현진)
▶2500안타를 깨고 은퇴하려 했는데 안 됐지. 400홈런도 치고 싶었고. 그런데 통산 타율은 안돼. 내가 근처에라도 있어야 어떻게 넘을 생각을 하지. 통산 3할3푼을 어찌 쳐. 한시즌 3할3푼도 어려운데. 오래 뛰었기 때문에, 통산 타율 1리 올리기도 정말 힘들더라.
-야구 말고 다른 취미는 없나요. 오랫동안 선수로 뛰면서 배트는 늘 똑같은 걸 쓰셨는 지 궁금합니다.(두산 김현수)
▶취미는 낚시 말고는 없다. 내가 홈런을 33개 쳤을 때 배트를 33인치까지 내린 적이 있었어. 보통 타자들이 34인치를 많이 쓰는데 난 항상 33인치반을 썼거든. 그때 무게를 줄이고 배트를 최대한 짧은 궤적으로 돌리기 위해 33인치로 내린거지. 결과적으로 효과를 봤어.
-오랜 선수 생활 동안 가장 힘들었던 점을 얘기해주세요.(두산 김동주)
▶나이에 대한 선입견이지. 4,5년 전부터 나이 얘기를 듣기 시작했는데 그런 편견이 싫었다.
-같이 한팀에서 뛰기도 했는데, 처음엔 그냥 야구를 잘 하는 동기생으로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존경의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. 대체 양준혁이란 선수를 그토록 열심히 하도록 만든 절실함은 무엇이었나.(LG 차명석 코치ㆍ동기생)
▶나는 내 자신에게 관대한 사람이 아니다. 항상 부족하다 생각했어. 야구란 게 끝이 없으니, 만족하는 순간에 퇴보한다고 . 잘 할 때에도 더 잘하려고 내 자신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 스타일이었다.
-'무릎팍 도사'에 출연했을 때나, 평소 인터뷰를 보면 말을 잘 하더라. 혹시 기회가 닿는다면 나중에 해설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나.(LG 차명석 코치)
▶지가 말을 훨씬 더 잘 하면서.(웃음) 전혀 없진 않아. 일단 연수를 다녀오면, 오퍼가 들어온다면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. 해설을 하게 되면, 그것 또한 야구 공부의 한가지가 아닐까. 그나저나 너 해설할 때 진짜 재미있게 잘 하더라. 명석이는 위트가 있어서 말 한마디도 재미있게 하지. 너 해설자때 어록도 생겼다면서.
< 김남형 기자 star@sportschosun.com>